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

【사 설】영일만에 영그는 산유국의 꿈과 현실

새용산신문 기자 입력 2024.06.04 10:19 수정 2024.06.04 10:33


박상배 순천향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 전 한국가스기술공사 상임감사

유럽국가들의 숨 가쁜 신음이 수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러시아의 가스 파이프라인에 목이 감긴 채, 게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에너지값을 천정부지로 끌어올렸다. 이 여파로 물가 급등·내수 부진을 불러 경제난을 가중시켰다.

경제 모범생으로 꼽히던 독일 같은 국가마저 몰락과 추락의 길로 접어들면서 ‘유럽의 병자’로 평가받는 지경이다. 

 

일차적 원인은 러시아 가스 의존과 ‘탈원전’에 따른 자업자득이란 지적도 비등하다. 우리라고 예외는 아니다. 에너지 소비량은 경제 성장과 함께, 어찌면 경제 성장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에 비추어 지금의 물가·이자·환율의 고공행진도 앞선 정부의 섣부른 탈원전 에너지 경제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의 에너지 소비량은 우리보다 인구가 많은 일본에 못지않고, 프랑스와 독일에 비슷하다.

영국보다는 훨씬 많은 에너지 소비량은 우리 경제를 떠받치는 반도체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방산 등 대외교역에서 원가경쟁이 필연적인 제조업 중심 산업구조와 불가분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이미 1970년대부터 급속한 경제 발전을 경험했다. 그와 함께 에너지 소비 형태도 소구력과 정부시책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천해 왔다. 석탄에서 석유 휘발유로, 가스와 전기로 그 형태가 쓰기 좋고 편리한 방향으로 옮겨 가는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다.

마이카시대로 접어들면서 석유로 자동차를 굴리고 원전으로 전기를 생산했으며, 도시화와 집단 주거형태의 변화로 난방과 산업용 연료, 산업용 동력자원도 급격한 변화를 맞았다. 

 

그러나 쓰기 쉽고 안전한 에너지로 옮겨갈 조건에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은 값싸고, 수급이 원활할 뿐 아니라 지속 가능한 자원이라야만 한다.

풍력 태양광 등 요즘 말하는 신재생에너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간헐성을 포함해 우리의 기후환경과 천연자원 조건을 고려해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에너지 수급에 절대 취약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산업화 과정에서 직면한 현실은 고통의 연속이다.

지난 1973∼1974년과 1979∼1980년 겨울, 전 세계에 불어닥쳤던 1·2차 석유파동은 우리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국제 석유 가격 상승으로 인한 1차 석유파동 때 정부는 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통령 긴급조치 제3호를 발동했다.

1978년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 70일간이나 원유 수출이 전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던 2차 석유파동 때인 1979년의 경제성장률은 6.5%로 하락했고, 1980년에는 -5.2%의 성장률에 물가상승률은 30%를 기록했다.

석유 위기로 외화 부담이 증가하고 무역수지가 나빠졌으며 외채 증가로 고 인플레이션을 겪는 고난의 시기를 걸어야 했다. 이때 세계 각국은 에너지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

석유 위기로 급등했던 국제유가는 1980년대 전반기까지 지속되다가 후반기에야 하락세로 전환돼 안정되면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바람을 몰고 왔다.

저유가와 함께 1980년 후반 동구권 자유화, 유럽경제통합,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영향으로 전 세계 경제가 성장 가도를 달렸다. 이 일을 계기로 많은 국가들이 지역 석유자원의 개발과 대체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에너지 다원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나라 에너지 공급의 구성을 보면 아직도 석유가 40.1%나 차지하고 있다. 1990년 8월 이라크가 루마일라 유전 분쟁에 대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재를 거절하며 쿠웨이트를 침공하는 걸프전이 발발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도 붕괴, 1992년 6월에는 리우 환경 개발 회의에서 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되면서 각국의 에너지 정책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에 우리나라는 1999년 1차 에너지 종합 대책을 세우고 3년마다 기후변화 대응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1990년대 유가 안정으로 증가하던 에너지 소비가 IMF 외환위기로 잠시 주춤했지만 1999년도에는 다시 증가하고 있다.

2000년대에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신흥국의 에너지 수요 급증으로 자원민족주의가 촉발되었다. 장기간 고유가가 지속되고 국제 환경규제, 세계 금융위기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했다.

이에 따라 에너지 안보와 자원개발 확보를 위한 국제적 경쟁도 심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세계 각국의 자원민족주의에 대비해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해 수급 안정대책을 마련하고, 에너지 절약을 장려하며 해외 자원개발도 추진해 왔다.

6월 3일 동해로부터 들려온 낭보는 이런 와중에 전 국가적 경사가 아닐 수 없다.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윤석열 대통령의 공식발표로 전해졌다.

최대 140억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하니 고동이 느껴진다.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 기술 평가 전문 기업인 미국의 액트지오사에 물리 탐사 심층 분석과 전문가들 검증도 거쳤다니 이 또한 현실에 한발 다가선 듯하다.

최대 140억 배럴이면 앞서 채산성이 떨어져 중단된 1990년대 후반 발견된 동해 가스전의 300배가 넘는 규모다. 대략 우리나라 전체가 사용하는 천연가스로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양으로 판단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동해 심해 석유가스전에 대한 탐사 시추 계획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석유 가스전 개발은 물리 탐사, 탐사 시추, 상업 개발 등 세 단계로 진행된다.

윤 대통령은 그간 반신반의해온 국민을 상대로 “금년 말 첫 번째 시추공 작업에 들어가면 내년 상반기까지는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차분하게 시추 결과를 지켜봐 달라고 주문했다

"나의 꿈이 출렁이는 바다 깊은 곳 / 흑진주 빛을 잃고 숨어 있는 곳 / 이 세상에 너의 모습 드러낼 때는 두 손 높이 하늘 향해 반겨 맞으리 / 제7광구 제7광구 제7광구"

45년 전인 1978년 가수 정난이의 히트곡 '제7광구 검은 진주'의 가사다. 여기서 검은 진주는 물론 석유다. 76년 당시에도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영일만에서 석유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대한민국 전체가 산유국의 꿈에 부풀어 올랐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세계 5위 석유 수입국 대한민국, 또다시 여름의 문턱에 들어섰다. ‘여름의 화로’와 ‘겨울의 부채’(夏爐冬扇,하로동선)를 생각하는 마음의 위로로 견뎌온 민족이다.

갈수록 팍팍해만 가는 민생고에 ‘엘리뇨’다, ‘지구온난화’다 핑게는 자연현상에 둘지라도 모쪼록 냉난방비 폭탄에 한숨 쉬는 국민들에게 7광구의 꿈도 ‘한여름 밤의 꿈’이 아닌 결실로 영글어 가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한다.

 



저작권자 새용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