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거여동, 장지동, 경기도 하남시 학암동, 성남시 수정구 창곡동, 복정동 일대, 즉 남한산성 청량산 서쪽 너른 평야는 2000년대 초에 '송파신도시'가 형성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지역의 신도시 이름 '송파신도시'를 다른 이름으로 바꾸게 된 것은 지역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경기도 성남시와 하남시가 신도시 이름에서 '송파'를 빼 달라고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송파 신도시는 '송파-거여 택지개발 예정지구(205만평)'가 정식 명칭이었다. 그러나 성남시와 하남시에서 3개 지자체에 걸친 이 지역 이름이 '송파신도시'인 것이 걸맞지 않다 하여 변경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에, 전문 학자 등 11명으로 명칭공모 심사위원단(위원장 배우리)을 구성, 2007년 5월 위원단에서 심사 끝에 ‘위례 신도시'로 결정했다.
위례성은 백제 건국 초기의 도성(都城)으로 원래 한강 북쪽에 있었으나 온조왕 때에 지금의 경기도 하남시의 이성산성(二聖山城)으로 옮겨왔다. 기록에는 위례성과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이라는 이름이 함께 나오는데, 흔히 한강 북쪽에 처음 만든 왕성을 위례성 혹은 하북위례성(河北慰禮城)이라 부르고, 한강 남쪽의 새 왕성은 하남위례성이라 불렀다고 한다. 위례(慰禮)는 우리말 '울타리'를 한자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위례신도시 일대는 대체로 남한산성 서쪽으로 전에는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중부면, 서부면 일원이었다.
이 지역의 옛 마을 이름들을 살펴보자.
서울 송파구 장지동(長旨洞)은 잔(작은) 버들이 많아 ‘잔버드리’로 불러 왔다. 주막거리, 새말, 웃구석, 웃말과 매착이의 일부를 병합하여 일제 때 장지리(長旨里)라 하다가 장지동이 되었다. 그 남쪽으로는 창고가 있었던 창말(창골)이 있었다.
지금의 성남시 수정구 속의 복정동(福井洞)은 본래 광주군 세촌면의 지역인데, 큰 우물이 있어 ‘복우물(복정,福井)이라 했던 곳이다. 근처에는 가마절, 기와골, 안골, 양지말 등의 마을이 있었다.
성남시 수정구의 단대동(丹垈洞)은 본래 광주군 세촌면의 지역으로서 붉은 고개 밑이 되어 단대골(단대.丹垈)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에 은행정이, 논골, 금광리를 병합하여 단대리라 하여 중부면에 편입하였다. 여기에도 양지말이 있었는데. 따로 웃말(상촌.上村)이라고 하였다. 그 남쪽으로는 응달쪽에 있었던 응달말(음지촌.陰地村)과 은행나무가 있었던 은행쟁이(으능쟁이)가 있었다. 주막거리와 논골도 단대동에 있었던 마을이다.
광주군 서부면에 있었던 학암리(鶴岩里)는 학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학바위(학암.鶴岩동)라 하였는데, 뒤에 군용지가 되었다. 이 학암리에서 가장 큰 마을은 돌무데기였다.
성남시 수정구 창곡동 창말 앞에 있는 들인 진터벌에는 육군교도소가 있었다. 이 곳은 병자호란 때 청군이 진을 쳤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