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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스포츠

【문화칼럼 에세이】빨라진 기차, 사라진 기억

새용산신문 기자 입력 2026.01.19 22:30 수정 2026.01.19 22:30

김영희 강원일보 디지털콘텐츠 부장


유년 시절 차멀미가 심했던 나는 할머니 댁에 가기 위해 태백에서 동해까지 한 시간 남짓 달리는 열차를 자주 탔다. 그 여정에서 가장 기다려지던 순간은 태백산맥을 넘는 창밖 풍경도,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도 아니었다.

투둑툭, 투둑툭.
달리는 열차가 만들어내는 일정한 소리 속에서 덜컹거리며 다가오던 간식카트가 가장 설레는 존재였다. 평소엔 엄마에게 아무리 졸라도 쉽게 먹을 수 없던 커피땅콩이나 다디단 바나나맛우유를 손에 쥘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공공장소에서 떼를 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한 어른의 선택이었을지라도, 아이에게는 작은 축제였다. 혹시라도 간식카트가 나를 지나쳐 갈까 조마조마해하던 기억, 아마 나만의 추억은 아닐 것이다.

주황색 그물망에 한 줄로 묶인 삶은 달걀, 투명한 도시락에 담긴 김밥, 진공 포장된 오징어, 세로로 가지런히 꽂혀 있던 비스킷과 잡지, 신문들. 수십 년이 흘렀지만 그 풍경은 여전히 또렷하다.

그 간식카트는 2018년을 끝으로 모든 열차에서 사라졌다. 대신 역사 안 편의점과 열차 내 자판기가 자리를 채웠다. “잘 없어졌다”는 평가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음식 냄새가 불편하다는 지적도, 카트가 오가며 시끄럽다는 불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사이 열차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지난해 국내 간선철도(고속·일반철도) 이용객 수는 사상 처음으로 1억7000만 명을 넘어섰다. 고속철도 이용객은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KTX와 SRT는 좌석 수를 웃도는 이용률로 하루하루를 달리고 있다.

이제 국내 어디든 2~3시간이면 도착하는 세상이다. 속도가 빨라진 만큼, 기차에서 ‘머무는 시간’은 짧아졌다. 1905년 경부선이 처음 놓였을 당시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17시간이 걸렸다. 먹고 마시는 일은 이동의 일부였고, 간식카트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고속철 시대가 열리면서 기차 안에서 음식을 먹는 풍경은 점점 어색해졌다. 효율과 정숙함은 남았지만, 여유는 사라졌다. 그래서인지 간식카트가 유독 그립다.

그것은 단순히 간식을 파는 장치가 아니라, 이동을 ‘기억’으로 바꿔주던 매개였기 때문이다. 목적지로 향하는 통로였던 기차는, 간식카트가 있던 시절에는 그 자체로 추억을 담는 시간과 공간의 상자였다.

이제 기차는 더 많은 사람을, 더 빠르게 실어 나른다. 하지만 가끔은 생각해 본다. 만석의 고속열차 사이로 덜컹거리며 다가오는 간식카트가 다시 등장해도 괜찮지 않을까.

바나나맛우유 한 병이면 충분히 길어질 수 있는 이동 시간이, 머리를 비우는 통로가 되지는 않을까. 빠른 이동보다 오래 남는 기억이 그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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