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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스포츠

이봉창 의사 의거 94주년 기념식 거행... 꺼져가던 독립운동에 불씨를 지핀 역사적 의거 재조명

김동영 기자 입력 2026.01.10 14:02 수정 2026.01.10 15:07


이봉창 의사 의거 제94주년 기념식에서 정수용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회장의 기념식사를 하고 있다.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이봉창 의사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는 이봉창 의사 의거 제94주년 기념식이 1월 8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엄숙히 거행됐다.

이날 기념식은 개회사, 국민의례, 애국가제창, 묵념, 홍인근 기념사업회 이사의 이봉창 의사 약사 보고에 이어 정수용 기념사업회 회장의 기념식사,

 


정수용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회장이 이봉창 의사 의거 제94주년 기념식에서 추모사를 통해 순국선열의 숭고한 뜻과 항일정신을 기리고 있다. ⓒ김동영 기자


이승우 서울지방보훈청장이 이봉창 의사 의거 제94주년 기념식에서 추념사를 통해 순국선열의 숭고한 희생과 항일정신을 기리고 있다. ⓒ김동영 기자


이규중 광복회 부회장이 이봉창 의사 의거 제94주년 기념식에서 추모 발언을 통해 독립운동 정신의 계승과 나라사랑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김동영 기자

이승우 서울지방보훈청장, 이종찬 광복회장의 기념사(이규중 부의장 대독), 사업회 및 참석자 헌화 봉정순으로 순국선열의 뜻을 기리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거행됐다. 행사에는 이세웅 유족대표 등 보훈단체 관계자와 시민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봉창 의사(1901.8.1~1932.10.10)는 1931년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던 상하이로 건너가 김구 선생을 만나 거사를 결의하고, 한인애국단 제1호 단원으로 입단했다.

이후 약 1년간의 치밀한 준비 끝에 1932년 1월 8일 일본 도쿄 경시청 앞 요요기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환궁하던 일왕 히로히토를 향해 폭탄을 투척했다.

폭약이 약하여 의거는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이 사건은 한민족의 자존과 독립 의지를 세계에 널리 알린 의거로 독립운동사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장에서 체포된 이봉창 의사는 같은 해 9월 일본 동경대심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0월 10일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31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이봉창 의사의 의거는 침체기를 겪던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독립운동 전선에 커다란 활력을 불어넣은 전환점으로 평가되며, 이후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홍구공원 의거로 이어지는 항일독립운동의 결정적 기폭제가 됐다.

백범 김구 선생이 귀국하여 1946년 07월 07일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3의사의 유해를 일본에서 환국시켜 서울의 성지 효창원(孝昌園)에 국민장으로 안장했다.

정부는 1962년 이봉창 의사에게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으나, 독립운동사에 남긴 역사적 위상과 희생에 비춰볼 때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이 아직 추서되지 않은 현실은 깊은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0월 유네스코 총회는 김구 선생 탄생 150주년이 되는 2026년을 유네스코 기념의 해로 공식 지정했다.

이봉창의사선양회 김동영 회장은 “백범 김구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의 물꼬를 튼 이봉창 의사의 의거는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자,

동아시아 평화에 기여한 역사적 의거”라며 “그 가치에 대한 국가적 재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정부가 오는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회의를 전후해, 이봉창 의사 의거에 대한 공훈 등급의 전향적인 결단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천 해원초등학교 박지민 학생이 이봉창 의사 의거 제94주년 기념식에서 헌화에 참여하며, 순국선열의 숭고한 뜻을 미래 세대의 손길로 이어가고 있다.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한편 이날 기념식에서는 인천 해원초등학교 박지민 학생이 헌화에 참여해, 미래 세대의 손길을 통해 순국선열의 숭고한 뜻이 오늘에서 내일로 계승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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