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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배 본지 주필 / 전 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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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칼럼】미래로 향한 ‘철피아’들의 함성과 기적“신고산이 우르르 함흥차 가는 소리에 구고산 큰애기 반봇짐만 싼다.” 우리 민요 신고산타령의 첫 소절은 풍자와 시사로 가득하다.
개화기 신문명 앞에서 놀라움과 두려움이 교차하던 시절, 이 노랫말만큼 그 격동의 정서를 생생히 담아낸 표현도 드물다. 경원선이 개통되고, 옛 고산 인근에 새 역이 들어서며 생긴 ‘신고산’이란 이름이 이 노래의 배경이다.
근대 문명의 기적(汽笛)이 울려 퍼질 때, 사람들은 흥분과 경이 속에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고 있었다.
1908년 육당 최남선은 ‘경부철도가’를 통해 기차를 신문명의 상징으로 찬미했다. 그는 “날개 가진 새라도 못 따르겠다” 했지만,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초라할 만큼 느린 시속 20km 남짓이었다.
그러나 인천에서 서울까지 하루를 꼬박 걸어야 했던 시대, 그 철마의 속도는 하늘을 나는 듯한 혁명이었다. ‘독립신문’ 기자가 “새도 따르지 못하더라”고 쓴 감탄사는 근대의 첫 심장이 뛰던 소리였다.
철도는 인류 문명사의 양면을 지닌 야누스였다. 근대화의 동맥으로 교류와 발전을 이끌었지만, 동시에 제국주의의 탐욕을 실어 나른 침략의 도구이기도 했다.
경인선으로 시작된 한반도의 철길에도 일본 제국주의의 야욕이 깊이 스며 있다. 그럼에도 철도는 여전히 인간과 공간을 잇는 가장 위대한 발명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지난 5일, 개교 120주년을 맞은 국립철도학교(총동창회장 김새한)와 국립한국교통대학교의 공동 세미나는 이러한 철도의 역사와 미래를 되짚는 뜻깊은 자리였다.
김새한 회장은 “대한제국의 격변기인 1905년,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 같던 시절 설립된 철도이원양성소의 창학정신을 되새긴다”며 “이제 IT와 AI가 주도하는 새로운 철도시대, 한반도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으로 달려갈 철마의 꿈을 실현하자”고 강조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서울에서 유럽까지 기차로 갈 수 있었던 시대도 있었다. 경성을 떠나 단둥, 하얼빈, 블라디보스토크를 지나 시베리아를 횡단해 파리까지 이어진 여정. 그 길은 문명에 대한 동경과 낭만의 통로였다.
손기정 선수 역시 그 길을 달려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의 영광을 안았다. 그러나 1945년 9월 11일, 서울을 출발한 마지막 열차가 신의주에 도착한 뒤 철마는 멈췄다. 분단의 현실 속에 ‘유라시아로 향한 꿈’도 멈춰선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다시 철로 위에서 경쟁한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带一路)’ 전략으로 대륙을 잇고, 고속철로 세계의 시간을 단축시켰다.
덩샤오핑이 신칸센을 타고 “등 뒤를 후려치는 느낌”이라 했던 1978년의 감탄은, 이후 중국의 초고속 성장의 예고편이었다. 반세기 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열차를 보유한 국가가 됐다.
우리의 철도 또한 그 긴 여정 속에 상처와 자부심을 함께 품고 있다. 일제의 잔재를 딛고, 분단의 경계를 넘지 못한 채, 그래도 묵묵히 산업화의 궤도를 달려왔다.
‘철도의 성지’ 용산을 떠나온 철도학교 출신들이 이날 세미나에서 외친 구호는 그래서 더욱 절절했다. “철피아의 단합과 전진!”
‘철피아(鐵pia)’란 말은 한때 기득권의 대명사로 비판받기도 했지만, 이날 그들은 이 용어를 새롭게 정의했다. “철(도인의) 피(와) 아(픔으)로 이룬 오늘의 성취를 사랑하자.” 산업화의 현장에서 피땀으로 쌓은 역사를 긍정의 언어로 되살린 것이다.
기차의 기적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산업의 동맥으로, 문화의 통로로, 그리고 미래세대를 실어 나를 꿈의 길로 달리고 있다.
그 길 위에 서 있는 철도의 후예들—‘철피아’들의 함성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디로, 어떤 속도로 미래를 향해 달리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