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배 주필 / 순천향대교수 / 전 언론중재위원 |
실제로 나무관 위에 돌을 덮은 적석목곽분 구조는 전 세계에서 스키타이족 무덤에서만 발견된다.
금관과 금허리띠, 금팔찌 등 황금장신구가 다량 출토된 점도 스키타이의 ‘황금민족’ 전통과 닮아 있다. 신라가 기마문화를 바탕으로 한 국제 교류의 중심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천년왕국의 영광과 비운
경주는 흔히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린다. 그만큼 유적과 문화유산이 도시 곳곳에 살아 숨 쉰다. 천년 동안 수도를 옮기지 않은 나라는 신라뿐이었다.
그러나 천년왕국의 막이 내리며 경순왕 김부는 조선의 정승으로 봉해지는 비운을 맞았다. 이때 ‘계림’으로 불리던 도시는 ‘경사로운 고을’이라는 뜻의 경주(慶州)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 이름이 과연 경사로웠던가. 왕국의 멸망과 백성의 한(恨)이 깃든 이름이었을지도 모른다.
김알지에서 경순왕까지, 천년가문의 뿌리
‘계림’은 경주 김씨 시조 김알지의 탄생과도 맞닿아 있다. 65년 탈해이사금 때, 계림 숲속에서 발견된 황금궤(金櫃) 속의 아이가 바로 김알지였다. 그는 태자 자리를 사양하고 대보(大輔)에 올라 충과 겸양의 덕을 보였다.
그로부터 7세손 미추왕이 즉위하면서 김씨 왕조의 시대가 열렸다. 신라 56명의 왕 중 38명이 경주 김씨였으며,
천년왕국의 혈통은 경순왕을 중시조로 하여 오늘의 경주 김씨 가문으로 이어졌다. 그야말로 ‘천년가문’이라 부를 만하다.
경주의 삶과 정신
신라인들은 사후의 영생을 믿고, 살아 있는 마을 안에 무덤을 만들었다. 경주 시내의 4~6세기 고분들이 모두 평지에 있는 이유다.
사람들은 선조의 무덤과 함께 살아왔고, 그 풍습은 천여 년 동안 이어졌다. 고분 사이사이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경주의 풍경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문화유산이다.
미래 천년을 향한 경주의 각성
이제 경주는 다시 깨어나야 한다. 세계사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계 속의 경주’로서 혁신과 자긍심을 품어야 한다. 현실을 직시하는 혜안과 함께, 원대한 비전으로 천년 미래를 설계할 때다.
이번 APEC 정상회의는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다시 천년왕국의 영광을 잇는 ‘경주의 부활’이 대한민국의 부활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경주는 한국인의 마음 속 고향이다.
늦가을의 경주를 찾으면, 낯선 듯 익숙한 따스함이 스민다. 떠나고 싶으면서도 머물고 싶은 감정의 교차, 그것이 경주가 주는 정서다.
매일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사람들처럼, 우리 또한 경주를 향해 고개 숙인다. 고향을 잃어가는 이 시대에, 경주는 우리 마음의 성소이며, 천년의 기억이 깃든 민족의 영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