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

【김창환 논설위원의 명심보감 강의】제1회 선을 쌓고 덕을 베푸는 삶의 길

새용산신문 기자 입력 2025.10.26 16:43 수정 2025.10.26 16:43


김창환 논설위원/행정학 박사, 한국의정연구원 교수

【김창환 논설위원의 명심보감 강의】제1회 선을 쌓고 덕을 베푸는 삶의 길

『명심보감』은 유교적 도덕의 정수를 모은 인생의 교과서다. 고전의 문장을 곱씹으면,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인간의 도리와 처세의 지혜를 새삼 느낄 수 있다.

공자(孔子)는 선(善)을 행하는 자에게는 하늘이 복으로 갚고, 불선(不善)을 행하는 자에게는 화로 갚는다(爲善者天報之以福, 爲不善者天報之以禍)”라 하였다.

이는 선과 악의 결과가 반드시 하늘의 이치에 따라 돌아온다는 경구로, 행위의 씨앗이 결국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진리를 일깨운다.

사마온공(司馬溫公)은 “금을 쌓아 자손에게 물려주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덕을 쌓아두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재물은 흩어지나 덕(德)은 남고, 덕이 자손을 지켜준다는 교훈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선행의 축적은 천하의 가장 안전한 유산임을 강조한 말이다.

경행록(景行錄)은 “은혜와 의리를 널리 베풀라, 인생 어디서든 다시 만난다”고 하였다. 원한을 남기지 말고, 언제 어디서든 화합의 인연을 쌓으라는 가르침이다.

세상은 좁고 인연은 길다. 결국 오늘의 마음이 내일의 만남을 결정한다.

동악성제(東岳聖帝)는 “하루 선(善)을 행하면 복(福)은 비록 오지 않더라도 화(火)는 멀어진다”고 했다.

선은 당장의 보상을 바라기보다, 마음의 평화와 인생의 균형을 낳는다. 반대로 악(惡)은 즉시 화(火)를 부르지 않아도 복(福)의 문을 닫는다.

‘순천자존(順天者存), 역천자망(逆天者亡)’이라는 공자의 말처럼, 천리를 따르는 길이 곧 생(生)의 도다.

오이를 심으면 오이를 얻고, 콩을 심으면 콩을 얻는 ‘종과득과, 종두득두’(種瓜得瓜, 種豆得豆)의 진리는 인간사의 불변 법칙이다.

현대적 교훈

태공(太公)은 “부지런함은 값없는 보배요, 삼감은 몸을 지키는 부적”이라 했다. 이는 오늘의 시대에도 유효한 자기 관리의 법칙이다.

경행록은 또한 “남의 선을 보면 내 선을 찾고, 남의 악을 보면 내 악을 찾으라(見人之善而尋己之善, 見人之惡而尋己之惡)” 하였다. 이 말은 현대 사회의 인간관계와 자기성찰(自己省察)의 핵심이다.

술자리에서 경거망동하지 않고, 재물 문제에서 분명함을 지키는 것이 군자(君子)의 자세다. ‘과전불납이(瓜田不納履),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의 교훈은 의심받을 일을 애초에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명심보감은 이런 일상의 경계심과 도덕적 긴장을 일깨워준다. ‘지족가락(知足可樂), 무탐즉우(務貪則憂)’라는 말처럼, 만족을 아는 사람은 즐겁고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은 근심이 따른다.

서경(書經)의 ‘만초손(滿招損), 겸수익(謙受益)’은 교만의 해로움과 겸손의 유익함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삶의 거울로서의 명심보감

『명심보감』은 단순한 도덕서가 아니다. 그 속에는 가족과 사회, 인간과 천도의 질서가 모두 녹아 있다.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의를 알지 못한다(玉不琢不成器, 人不學不知義)”는 구절은, 끊임없는 수양과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황금보다 귀한 것은 덕(德)이고, 천금보다 값진 것은 가르침이다. 한서(漢書)의 “황금이 가득해도 자식에게 한 경전 가르침만 못하고, 천금(千金)을 주어도 한 가지 기술 가르침만 못하다”는 말은 교육의 본질을 꿰뚫는다.

이미 얻은 즐거움 뒤에는 언제나 불측(不測)의 근심이 도사린다. 그렇기에 한때의 분노를 참는 자가 백일의 근심을 면한다는 ‘인일시지분(忍一時之忿) 면백일지우(免百日之憂)’의 경계는 오늘의 세상에도 유효하다.

맺음말

『명심보감(明心寶鑑)』은 인간이 살아가는 도리(道理)의 원점이다. 선행과 겸손, 효와 근면, 절제와 학문의 정신은 시대를 넘어선 생(生)의 지침이다.

오늘의 복잡한 세상 속에서도 이 고전의 거울을 다시 들여다보면, 마음이 맑아지고 삶의 길이 또렷해진다. 그것이 명심보감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마음의 보배’다.



저작권자 새용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