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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 의사 영정과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 ⓒ김준태 기자 |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큰 별, 이봉창(李奉昌) 의사의 숭고한 희생과 애국정신을 기리는 제93주기 추모식이 10월 10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묘역에서 엄숙히 거행됐다.
이날 추모식은 사단법인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회장 정수용) 주관으로 열렸으며, 전종호 서울지방보훈청장, 보훈단체 관계자, 용산구의회 의원,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해 순국선열의 뜻을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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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 의사 영정 앞에서 헌화 후 기념 촬영하는 참석자들 (좌로부터 김희숙 효창동주민자치위원장, 김동영 이봉창의사선양회 회장, 오천진 용산구의회 의원, 김송환 용산구의회 복지도시위원장, 김용호 서울시의회 도시안전건설위원회 부위원장. ⓒ김준태 기자 |
일제의 심장을 향한 결연한 의거
이봉창 의사는 1901년 서울 용산에서 태어나, 일찍이 국권 회복을 결심하고 1931년 상하이로 건너가 백범 김구 선생이 이끄는 한인애국단 1호로 입단했다. 그는 1932년 1월 8일, 일본 도쿄 요요기 연병장에서 환궁하던 일왕 히로히토를 향해 폭탄을 투척했다.
폭약의 위력이 약해 거사는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이 의거는 일제의 심장부를 직접 겨냥한 최초의 독립투쟁으로 일본 조야(朝野)를 충격에 빠뜨렸으며, 침체기에 놓였던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독립운동 전선에 새 숨결을 불어넣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 의거는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홍커우 공원 의거로 이어지는 기폭제가 되었다. 현장에서 체포된 이 의사는 같은 해 9월 사형을 선고받고, 1932년 10월 10일 도쿄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서른한 해의 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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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용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회장이 추모사 하고 있다. ⓒ김동영 기자 |
“그 뜻과 정신, 후대가 잊지 않겠습니다”
정수용 회장은 추모사에서 “이봉창 의사의 희생은 일제강점기의 절망 속에서도 민족의 자존을 일깨운 등불이었다”며 “오늘의 대한민국은 그분의 용기와 결단 위에 서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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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 의사에게 바치는 편지를 낭독하는 인천 해원초등학교 전교회장 박지민. ⓒ김동영 기자 |
이날 행사에서 인천 해원초등학교 전교회장 박지민 학생이 ‘이봉창 의사에게 드리는 편지’를 낭독하자, 참석자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박지민 학생은 “의사님의 용기와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마지막 문장으로 편지를 맺으며, 뜨거운 감동을 남겼다.
“대한민국장 추서, 이제는 마땅한 일”
정부는 1962년 이봉창 의사의 공훈을 기려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으나, 아직까지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은 수여되지 않았다. 이날 추모식에 참석한 시민들과 관계자들은 “이봉창 의사의 위업은 국가 최고훈장에 걸맞다”며 늦었지만 ‘대한민국장’ 추서는 반드시 이뤄져야 할 역사적 예우임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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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연 빙그레 회장. ⓒSNS켑쳐 |
김호연 회장의 선양사업, 백범의 뜻을 잇다
이봉창 의사의 선양사업은 김호연 빙그레 회장의 각별한 헌신에 의해 지속되고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사위이기도 한 김 회장은, 후손 없이 순국한 이 의사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를 재건해 회장으로서 그 뜻을 기리고 있다.
그는 사재를 출연해 김구재단을 설립하고, 독립기념관 이사와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독립유공자 지원과 선양사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최근 빙그레가 추진한 ‘독립운동 캠페인’ 역시 그의 철학과 뜻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청소년이 기억하는 독립운동가”
이성우 김구선생기념사업회 사무처장는 “많은 시민과 청소년이 이봉창 의사의 뜻을 배우고, 조국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의 정신을 되새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효창공원에 잠든 이봉창 의사의 묘역은 이날 헌화와 묵념, 추모의 편지로 가득 찼다. 93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이름과 정신은 오늘도 용산 하늘 아래 살아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