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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상배 교수 칼럼】죽여야 더욱 살아나는 것들...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스승을 만나면 스승을 죽여라!

새용산신문 기자 입력 2024.05.14 08:41 수정 2024.05.14 08:41


박상배 순천향대 교수, 전 가스기술공사 상임감사

“그대들이 참다운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안으로나 밖으로나 만나는 것마다 바로 죽여야 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스승을 만나면 스승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 권속을 만나면 친척 권속을 죽여야 해탈해서 자유롭게 된다.”

중국 당나라의 선승 임제(臨濟, ?~867) 선사는 ‘살불살조’(殺佛殺祖)의 사자후로 유명하다. 패러독스 자체만으로도 선(禪)불교 임제종 시조의 파워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렇게 애둘러가지 않고, 곧장 질러버리는 명쾌한 깨달음이 선공부의 매력은 아닐까 싶다.

법의 이치를 얻고자 한다면 사람에게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안을 향하든 밖을 향하든 만나는 대로 바로 죽이라고까지 한다. 왜 그랬을까. 교리와 율법과 전통 등이 뒤섞여 하나의 패러다임이 생겨나게 된다. 이를테면 우상이라는 것이다. 부처라는 이름의 우상, 예수의 이름을 가진 우상, 공자 맹자라는 우상들이 속속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온 얘기다. 

 

근원 추구로 진리로부터도 자유로워야...

부처와 스승과 부모의 가르침도 깨달음에 이르는 하나의 방편일 뿐, 그것에 묶여버리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떤 문제의 해법도 자신 밖에서 구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모든 생명에 폭력과 살생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붓다가 내린 오계 중 첫째 덕목이다. 

 

그 제자인 임제 선사는 붓다를 만나면 망설이지 말고 죽이라고 말한다. 또 지고한 인품과 지혜를 가진 그 어떤 스승일지라도 만나게 되면 가차 없이 죽이라고 말한다. 번민을 통해 깨달음과 해탈을 위해서는 안으로나 밖으로나 만나는 것마다 바로 죽여야 한다. 

 

요즘 말로 말하면 ‘창조적 파괴’인 셈이다. "예수를 죽여야 예수가 산다." "공자를 죽여야 공자가 산다." 그 근본이 같음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한다. 그러자면, 우리가 그 진리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를 죽여야 정치가 살고, 보수를 죽여야 보수가 산다
불기 2568년(2024, 기원전 544), 부처님 오신 날을 하루 앞두고 임제록의 ‘상식과 윤리를 저버리는 무지막지한 선언’을 굳이 끄집어 낸 이유도 성불하는 자세를 차용해 봄직해서다.

모든 번뇌를 해탈해야 불과(佛果)를 얻듯이, 부처를 얻기 위해 부처를 죽여야 하듯이 “정치를 죽여야 정치가 살고, 보수를 죽어야 보수가 산다, 진보 또한 예외가 될수 없다”고 주장하고 싶다. 이왕 종교계로 서두를 꺼냈으니 말인데, 가톨릭의 부패는 종교개혁을 통한 개신교를 낳게 하였고 기독교를 세계화하게 했다.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는 불교가(불교사상이) 제 역할을 못다해 왕권이 쇠락해지고 결국은 패망에 이르게 됐다. 공자, 맹자학을 중심으로 한 주자학 또는 유교가 중심이었던 조선은 유학이 제 역할을 잃고 쇠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세속화된 나머지 "하나님 까불면 죽어"하며 광화문을 휘젓고 다니는 목사가 있고, 일베 활동을 하며 각종 집회나 쫒는 종교지도자도 있다. 그들은 자신이 믿는 신이 존재한다고 정말 믿기나 할까. 성인의 가르침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가르침을 악용하는 무리들로 인해 항상 문제가 야기된 역사가 수두룩하다.

보수의 혁신적 가치는 창조적 파괴에 있다
4.10 총선 결과가 나온지 한달이 지났다. 집권 여당 사상 전례 찾아볼 수 없는 대참패인데 아직까지 위기를 위기로 제대로 느끼고 있느냐 지적이 많다. 정치사에서도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해 극심한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사회에 "정치인을 죽여야 정치가가 산다."는 화두가 던져진 지 오래다.

승자에게도 패자에게도 성장은 끊임없는 죽임의 여정이다. 모두 차분한 성찰의 시간을 보내야 할 기간이다. 이전에 보수를 견인했던 내재적 힘은 변화와 개혁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보수의 진정한 강점은 이후의 치열한 논박과 진화다. 수직적 문화가 강한 보수 정당이지만 소장파 의원들 역할이 늘 있었다. 16대 국회 미래연대나 18대 국회 민본21 등에서 소장파 의원들이 당이 갖고 있는 무거운 권위에 도전하면서 합리적 목소리를 냈던 것이 성공사례다.

일사불란하게 당이 움직이려고 할 때 항상 위기에 직면했다. 현재 국민의힘에서 볼수 있는 뚜렷한 현상이다. 어떤 생물체도 변화 없이 생존 없다. 혁명당하기보다 스스로의 변화가 더 낫다. 건강 잃은 사회적 약자를 방치하면 유기체 전체의 생명도 위태롭다. 그러니 약자들 보듬어 치유할 따뜻한 온정적 보수여야 한다.

뭘 버리고 뭘 지켜 계승할지 고민하라. 상대가 더 훌륭하면 베끼는 데도 주저말라. 이념에의 집착이 약한 건 보수의 강점이다. 유연하지만 조심스럽게 숙고하는 개혁, 그게 보수다.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나라는 사랑스러워져야 한다.”(박지향 『정당의 생명력』 등 참조)

‘보수가 죽어야 보수가 산다’는 말은 보수의 혁신적 가치에 대해 말해왔다. 만나는 우상마다 파괴하고 죽여야 성장한다. 진리로 떠받드는 믿음, 무의식중에 나를 억압하는 목소리,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마음의 상처, 스스로 만든 감옥이 우상이다. 옛 나를 죽이고 새 나로 태어나는 것, 이 존재에서 저 존재로 건너가는 변환이 성장이다.

법고창신의 정신이 보수주의의 덕목이다.
정신적으로 늙고 낡은 기존 관념에 사로잡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 자신의 생각과 믿음을 고집하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 보수진영 주위에 이런 사람이 많다. 대통령에게 기생해 자기 권력 지키며 인재 안 키우니 진정한 보수 전사의 씨가 말라 왔다. 그 속에서 이번 선거가 보수에 남긴 희망이 있다면 김재섭, 김용태, 이준석 같은 30대 후보의 당선이다.

이들은 금배지 달려고 누구처럼 소신을 굽히지도, 최고 권력자에게 아부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보수는 부분적인 세대교체에 성공했다는 얘기가 그나마 위안이다. '3040' 총선 출마자들이 뭉친 '첫목회'의 여당내 역할과 약진은 그래서 기대된다

좌파가 좌파답지 않고 우파 또한 마찬가지다. 진정으로 우리나라에서 좌우 대결이 있으려면 양자 모두 바뀌어야 한다. 결국 처절히 성찰해야 할 선거의 주체는 국민의힘이다. 특히 우파는 우리나라를 제대로 만드는 데 필요한 가치를 고민해야 한다. 진정한 우파라면 인격 존중 같은 정신적인 가치를 계발(啓發)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보수에의 신념이 확고했다면 진보의 각종 포퓰리즘을 매섭게 추궁해야 했다. 다급하게 따라가기보다는 ‘규제 철폐’‘기업하기 좋은 자유’‘기득권 내려놓기’‘사회적 약자 배려’ 등을 보수의 기치로 대중을 파고 들어야 했다. 제 입맛에 맞는 조사나 해 온 여의도연구원이라면 해체하고 보수의 전략 싱크탱크와 정치 아카데미를 만들라는 주문도 있다.

절실함 만큼 큰 효용성 어디에도 없다. ‘젊은 보수’들을 키워 당정에 발탁, 미래의 보수 리더를 키워라. 머리 굳은 관료·검찰·경찰 대신 창의성과 조정 능력, 기업가 정신 갖춘 이들로 보수의 주축을 확 바꿔야 한다.

외연 확장, 설득과 홍보 역시 보수의 병기여야 한다. 왜 모든 시민단체나 노동·환경·복지는 진보 편이라 지레 푸념만 하는가. 중원 건너 좌측으로 전진해야 할 보수다. “보수를 구하기 위해서도 보수를 죽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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